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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프로페셔널, 화인

노랑콩 2010. 8. 8. 01:25


우연히 티비를 돌리다가 눈에 딱 들어오는 신윤복의 작품. 평소에도 그림에 관심이 많은 터라 주저없이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이비에스 특유의 딱딱한 해설체가 귀에 들렸고, 단번에 느낌이 왔다. 좋은 프로그램 보겠구나.

아이의 사생활로 이미 몇차례 접했던 다큐프라임. 역시나 걸작 프로그램 하나 또 내셨다. 바로 조선의 화가를 다룬 이야기.

 

조선의 프로페셔널, 화인 (EBS 다큐 프라임)
http://home.ebs.co.kr/docuprime/view/view2.jsp?command=vod&chk=L&client_id=docuprime&menu_seq=1&out_cp=naver&enc_seq=3008247

 


1부 김홍도편은 보지 못했지만,
운이 좋아 2부 신윤복 편과 3부 김준근편은 볼 수 있었다.


"달빛 침침한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윤복의 작품. 뛰어난 구도와 색채 뿐만이 아닌 조선사회 단면을 화폭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의 작품이 난 너무나 좋다. 당장 종이를 반으로 접기만 하면 골목길 저 너머에서 몰래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의 모습을 볼 것만 같은 기분.
유독 기생과 양반의 모습이 많이 비친 그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그림. 억압받던 조선의 여인이지만 그녀들 역시 우리와 많이 다르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적혀있는 문구 역시 그림과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미 바람의 화원이란 책을 통해서 신윤복의 많은 작품을 보았다 생각했지만, 그의 작품은 내가 알고있는 이상을 담고 있었다. 기생과 양반, 조선의 사회, 조선의 여인. 사회를 향한 그의 비판적 시선. 그림의 구도, 그림의 색채. 이 모든것들을 아우르는 한 편의 걸작 프로그램을 봤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정말 푹- 빠져서 너무도 짧은 한 시간을 보냈다.



우연이였을까? 어제 죽기전에 봐야 할 명화 100편이라는 디비디 목록을 훑으며 알게 된 "테스". 어쩐지 흥미가 생겨서 정보를 찾아보았고, 집에있는 문학 전집에서 책을 찾았다.

여성을 억압하던 시대를 향한 비판적 시각을 옮겨놓은 테스의 저자 토머스 하디. 그가 표현하고 있는 그 시대의 부조리한 모습의 글을 바로 어제 새벽에 읽었었다. 그런데 그런 토머스 하디의 시선과 신윤복의 시선이 겹쳐보였던건 내 착각이었을까. 신윤복의 그림 속 기생들의 모습과, 토머스 하디의 소설에서 그려내는 테스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되는 기분을 느꼈다.

억지스러울수도 있겠지만, 테스를 읽고 난 직후라 그런지 신윤복이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의 사회 비판적 시각이 전보다 더 자세하게 보였던 건 사실.





신윤복을 다룬 2부가 끝난 시간이 꽤 늦었음을 알았지만 3부를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이어 하는 3부 프로그램도 시청 시작.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김준근. 독특한 그림체나 내용을 보면 한 번쯤은 들었을법 한데도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그의 이름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이렇게나 그림에 무지했나 싶어서.

우리나라보단 외국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그의 작품들. 평민 출신으로 조선 후기 개항으로 인해 외국인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상대하며 조선의 문화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알고서야 비로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 시기에 한창 유행했다던 수출화. 외국에서 남아있는 작품들로 우리의 옛 문화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역설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었다. 비록 외국에 존재하더라도 이 작품이 우리의 문화를 담고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으니.

문헌에도 남아있지 않는 제의 상황이라던지, 형벌, 놀이 등 조선시대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그의 수천점의 그림에서 그 시대를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조선의 뛰어난 화가 한 분을 알게 되어서 더욱 신났던 순간.






총3부작의 프로그램 중 2편이나 볼 수 있었다는 사실로도 너무나 만족.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본다 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프로였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을 만큼.
그저 눈으로만 그림을 본다던지, 글로 풀어놓은 그림을 본다던지 하는 것과는 그 느낌부터 달랐던 짧은 두 시간. 너무나 값진 경험을 했다. 색, 선, 표현, 내용, 시대, 작가. 그 모든걸 떠나서 그림을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순간.


알면 알수록 더 빠져들고
보면 볼수록 더 알고싶은게 바로 그림이 아닌가 싶다.